요즘 재미들린 모 클럽에 오늘 올린 글
제가 10년 가깝게 유학생활을 하면서 결심한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애 조기유학 안보낸다.(이 이야기 보따리도 차차 풀어볼께요)
둘째가 남편 장기해외출장 단신으로 안 보낸다. (쫒아가던지 아님 아예 못가게하던지요)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해외에 홀홀단신 나와서 바지지퍼 풀린 멍멍이 짓들 정말 많이 하더군요.
해외에 한인사회가 생길만하면 한식당 다음 번성하는 사업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한국식 노래방, 룸싸롱식의 매춘업이죠.
제가 있는 곳은 한인사회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은데 얼마없는 5개 한식당 중 2개가 룸싸롱 겸업을 하고 있어요.
가족과 함께 나와있는 주재원, 단신으로 나와있는 주재원 포함 현지 한인들할 것 없이
대부분 남자들 구멍동서라는 둥 이런 이야기가 흉흉하게 전해지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놀라운 건 그런 이야기꺼리가 전혀 놀라울 것 없다는 톤이라는 사실이예요.
사실 결혼을 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다른 사람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면
그로인해 고통받을 배우자와 가족에게는 참 안타깝지만
그건 개인의 연애사고 개인의 가정사라는 생각입니다.
거기에 다른 사람의 도덕관념이라던지 그런 게 끼어들 성격의 일이 못되겠죠.
하지만 매춘은 다릅니다.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 이것은 인권을 해치는 범죄예요.
하면 안되는 건데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는 이걸 너무 가볍게 용인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네요.
왜 그럴까요.
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남자는 성욕을 잘 못참는 존재라 제 때 풀어주지 못하면;; 딴 짓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당연히 딴 짓 하는 남자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제 때 못 풀어준 여자 잘못이다(젠장) 라는 생각이 휭행할까요?
왜 우리는 남녀불문하고 건강하지 못한, 일그러지고 이중적인 성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걸까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뭔가 근본적 원인의 가닥을 희미하게 본 에피소드 얘기를 해드리고싶어요.
5, 6년 전으로 기억되요.
길거리를 걷다가 인파 속 길바닥에서 할머니가 플라스틱 병을 들고 서너살 되보이는 손자 오줌누이는 광경을 봤습니다.
주변은 나름 번화한 곳이라 조금만 서두르면 근처 식당 화장실을 양해를 구하고 사용할 수도 있는 환경이였죠.
물론 오줌 참느라 울상이된 귀한 손주 혹은 아들을 끌고 화장실 찾기 미션이 할머니나 엄마한테 어려운 미션일 수도 있겠네요.
편리면에서도 그냥 그자리에서 바지 내리고 플라스틱 병으로 해결하는 게 손쉽겠구요.
하지만 만약 손자가 아니고 손녀였으면 상황은 어찌됬을까요?
화장실 찾기까지 인내가 닿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영락없이 바지나 치마를 적시는 수 밖에는 대안이 없군요.
정말 간단한 한 예지만 이렇게 어려서부터 양육방식이 갈립니다.
욕구 바로 충족(여기선 배설욕이라 하겠지만, 이걸 성욕에 비유한다면 너무 비약일까요?)의 양육. 과연 옳은 걸까요...
식욕의 바로충족 이야기는 저어기 밑에 1편에서 이미 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구들이 원할때 바로바로 충족되 버릇하면서 자라나게 되는 생명.
우리는 과연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건지 이기적인 괴물을 길러내고 있는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게되요.
더 하고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다른 분들의 의견도 많이 듣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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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말씀에 좀 더 첨언을 하자면
이렇게 필요한 모든 욕구들이 바로 충족되며 길러진 우리의 개차반 아들들은
자기 힘으로 필요한 것을 찾는 것에 게으릅니다. (어려서부터 굉장한 귀차니즘의 길을 걷지요. 그래도 되요. 엄마가 다 해주니까)
심지어 섹스도요.
사실 우리나라는 매춘으로의 접근이 심각하게 용이한 곳입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도 있다. 뭐가 더 문제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란만큼 소모적인데요.
한 일반여성을 만나서 사귀고, 공들이고 기타등등 한다음에 섹스를 하기까지의 노력보단
손쉽게 돈으로 댓가를 치루고 원하는 걸 얻는 게 더 편리하단 거죠.
사실 슬프게도 여기엔 정조관념, 도덕이 들아갈틈도 없어요.
직업여성과의 경험에 의거해서 점점 섹스란 그들 머릿속엔
사랑하는 이와의 육체적 소통이 아닌, 그저 욕구의 해소라는 개념이 자리잡게 되는거구요...
원하는 걸 얻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기초 교육이 안된 우리 개차반 대한남아들이 왜 그런지 조금 이해가 되시려나요.
끔찍한 현실이예요.
물론 현실적으로 일반여성과의 섹스까지로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고 어렵다는 이유도 있겠네요.
우리네 여성들은 성교육 전에 순결교육부터 받는 사람들이니까요.
가끔은 어쩜 이렇게 다른 남자와 여자가 한 나라에 사는지가 놀라울 때도 있어요.
결혼 후의 정조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다른 테마이긴 하지만요.
제 기본적인 생각은 그래요.
사실 결혼식이라는 이 닭살돋는 코스프레는 따지고보면
부모 친지 지인들 한자리에 모아놓고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이라면 심지어는 신까지 증인으로 불러놓고)
이제부터 죽는 그날까지 이 사람하고만 섹스하겠습니다.하고 선언하는 거 아닌가요?
다수의 다른 이와의 섹스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결혼보다는 연애나 합의에 의한 동거등 다른 사는 방법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물론 당사자간의 깊은 대화와 합의가 있어야되는 것이겠죠.
결혼이라는 것을 결정할 때
저나 즈이 남편이나 계속 머릿속을 맴돈 테마는 바로
'결정하고 난 후에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다'라는 생각이였죠.
그만큼 내가 살 방법(그 방법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일 경우)에 관한 결심을 하기 전에 심사숙고가 필요한 것 같구요.
안타깝게도 이런 걸 우리 부모님이 삶을 통해서 가르쳐주진 않죠.
심지어 뼛속까지 귀차니스트인 곱게큰 개차반 아들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결혼을 하는지도 전 좀 회의적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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